2022-05-15 14:53:00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더냐?”
왕, 제후, 장수, 재상의 지위는 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닌,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난 20대 초반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도, 틈틈이 책을 읽었는데, 아마 ‘초한지’에서 읽었던 듯 싶다.
다른 내용은 기억이 없지만 위 구절은 생생하다. 왜냐하면 저 구절이 나에게 현실을 타개할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었고, 무의식속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알아보니, 진나라 말기때 진승.오광의 농민 반란군이 위 구절을 명분으로 삼고, 농민들을 선동하였다 한다.
내가 쉽게 선동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에게는 impact하게 다가왔고, 진승,오광의 난 때처럼 내 현실을 타개할 명분으로 충분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곳은 ‘달전’이라는 마을인데, 유원에서 2km 골짜기로 더 올라가면 나오는, 당시 20여호가 사는 조그마한 산골이었다.
토양이 척박하고 달리 특산품도 없는 곳이라, 그 당시 깨어 있는 사람은 마을을 떠나 마산으로 이사가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친구네도 초등4학년때 마산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간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방책은 아니지만, 지금의 현실을 헤쳐나갈 방법으로서 산골동네에서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리라...
친구 아버님은 부두에서 하역노동을 하셨고, 어머님은 어시장에서 생선을 사서 소매로 파는 일을 하셨다.
농사일이 힘들다 하지만, 아마도 시골생활보다 몇 배 더 힘든 고생을 감내하고, 자식교육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담대한 결단을 하심에 틀림없으리라...
우리집도 어머니가 마산으로 이사를 가자고 간청했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여기서는 돈이 없어도 생활이 되지만, 그기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고, 만에 하나 자신이 아프기라도 한다면 어떻게할 것인가를 이유로 반대했다.
당시 아버지는 이웃마을에 금(Gold)캐러 다니셨는데, 논갈고 밭가는 일만 도와주고, 나머지일은 모두 어머니 몫이었다.
사시사철 땅굴속에서 곡괭이로 땅을 파도 금을 캐지 못하면 그만인, 생계수단이 되지 못하는 고된 노동이었던 것이었다.
한번은 추운 겨울인데 아버지가 밤 늦도록 집에 오지 않아, 어머니와 큰형이 마중을 나갔다.
산 고개넘어 비탈길 절벽에 굴러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몇년을 다녀도 금도 캐지 못하고, 세월만 보낸탓에, "이제 광산 그만두고 마산으로 이사를 가든지 아니면 농사라도 제데로 짓자"고 어머니에게서 시달리고 있던 상태에서, 이러지도 저렇게도 결단을 못하고 괴로워 하던차에, 술로서 당신의 초라함과 쓸쓸함을 달래었던가 보다..

2022년2월12일 북한산 원효봉 오후5시
'개인앨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석부1.17살 시련 (0) | 2022.10.09 |
---|---|
출석부2.dream,공인회계사를 꿈꾸게 된 사연 (0) | 2022.10.08 |
출석부4,운명, 평생 먹을거 찾으러 다니다 인생 종친다! (1) | 2022.10.07 |
출석부5,사랑의 체험수기 (1) | 2022.10.07 |
출석부6.사랑의체험수기2 (0) | 2022.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