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부4,운명, 평생 먹을거 찾으러 다니다 인생 종친다!
2022-05-20 02:37:00
나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제일 산꼭대기에 있는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꼭대기 고시원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고시원비가 다소 저렴했고, 학원도 다닐 필요가 없었기에 구지 돈을 더 들여서 교통이 좋은 아랫동네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유혹의 환경이 없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다행이 같은 고시원에 세무사 공부하는 학교 후배를 알게되어 같이 공부이야기도 나누면서 많은 도움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때가 아마 내가36살(2003년도)에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어니까, 2002년도 35살 때인 거 같다.
나는 매일 아침6시에 일어나 1시간 공부하고 7시에 아침을 먹고 난 후 그 후배와 밖에서 커피한잔 하면서 담소를 나누곤 했는데, 한번은 그 후배가 다른 후배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것이다..그것도 여자 후배를..
나는 너무나 반가웠고 주말에 내가 술을 한잔 사기로 했다.
"근런데, 형님! 그 여자 후배가 형님보고 뭐라 할 줄 아십니까?"
"어잉?" 나는 뜬끔없는 후배의 눈 흘기는 질문에 당황했다...
"세상에 뭐 이런 선배가 다 있노?" 할 겁니다 아마"
"어잉? 이 자식이..내가 뭐 어때서?"
방에 들어와 가만 생각해보니, '이 후배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도 그럴것이, 내가 아침먹고 커피한잔 하면서, 온갖 음담패설을 쏟아낸 것이 후배에게는 역겹게 여겨졋었나 보다...
내 기분에 막 쏟아낸 말도 있지만, 저 공부 안될때 스트레스 해소되어라고 해 준 말도 많았었는데...쩝..
고시원 생활이란게, 비육기에 접어든 돼지를 움지이지도 못하게 해놓고 살만 찌게 하는 거 처럼, 밥만 먹고 좁은 골방에 갇혀 있어니 감옥과 다름없다. 단지 스스로 갇혀 있을 뿐.
어느덧 토요일이 되어 저녘에 후배와 같이 내려갔다. 그 여자후배는 아래동네에서 같은 세무사공부를 하고 있었다.
저만치서 그 여자 후배가 오는데...
"아.." 약간 충격이었다.
슬리퍼에 츄리닝 바지를 입고 나타난 것이다.
말 그대로 신림동 패션이다.. 이 동네에서는 흠이랄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 선배들을 만나러 오는데...내가 남잔데...
암튼, 나는 일절 내색 않았고, 우리는 주점으로 들어갔다.
여자 후배가 막걸리를 따라 주었다.
"선배, 만나서 반가워", "마셔 !", "꿀꺽~ 꿀꺽~", "크~~아~~"
난 어안이 벙벙 해서 그저 입만 벌리고 있어야 했다.
선후배를 떠나 난생 이런 여인은 처음 이었고, 나야말로 '세상에 뭐 이런 후배가 다 있노?' 였다.
손금을 봐 준다면서 내손을 잡아 채고 이래저래 살펴 보더니, 생년월일과 태어난 일시를 말해 달라 했다.
" 원숭이 띠고, 새벽에 태어났다".
이 말을 듣고, 그녀는 무언가 강한 필을 받았는지, 잡은 내손을 언제 손금 봐준다고 했냐 는 듯 뿌려 치더니,
" 아, 그럼 볼 것도 없네"
"원숭이가 새벽에 태어나서 평생 먹을 거 찾으러 다니다가 인생 종친다!"
"어..~ 잉?" 난 그녀의 괴기한 행동과 언사에 넋 놓고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걸어온 길, 내가 생각하고 계획하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예언한 것이다.
그녀는 2학년 마치고 휴학을 해놓고 공부하던 중이었고, 이듬해 세무사 1차와2차를 동시에 패스한 대단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여고시절에 사주학을 공부했다고 했고, 그건 사실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었다.
나라면 감당하지도 못 할 생의 근원,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내 온 "철의 여인" 이었다.
얼마전 잠깐 통화를 했는데,, 남편은 해외 파견나가고, 세무법인 일하면서, 아들 둘 키우면서 잘 살고 있단다.
그때 신림동 노래방에서 그녀가 휘젓고 다니며 부른 노래를 되시기며, 원숭이는 오늘도 먹을 거 찾으러 나서야 겠다.
"암만 평생 먹을거 찾다 볼 장 다본다 해도, 쉬어가면서 해야겠다"